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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나교(Jainismus)

자이나교란 무엇인가 - 번역(1)

by 貧者一燈 2023. 12. 18.

 

 

자이나교란 무엇인가

 

채식 탁발 단식이라는 생명의 관점

 

저자 : 우에다 마사히로(上田眞啓)

발행 : 풍향사(風響社)

연도 : 2017

 

 

번역시기 20231115일 수요일

번역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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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나교란 무엇인가

 

채식 탁발 단식으로 생명을 보다

 

우에다 마사히로(上田眞啓)

 

 

머리말

 

인도를 전혀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뜻밖의 소식인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인도의 도시를 걷다 보면, 대형 햄버거 체인점과 피자가게 등 패스트 푸드 가게를 때때로 보게 된다. 오늘날 특히 도시 밖의 교외에서 앞다투어 건설 중인 거대한 쇼핑몰의 식당가에는 유명한 패스트 푸드의 가게로 꽉 들어차 있다. 게다가 그것을 먹을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다. 손님들은 대부분 젊은 사람이지만, 가족을 동반한 경우도 있다. 일본의 쇼핑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매우 흔한 광경이 지금 인도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사진1)

내가 처음으로 인도를 방문한 때가 2008년이었는데, 그즘에는 이미 이와 같은 광경이 보편화되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인도로 유학했을 때는 그로부터 4년이 지난 뒤 2012년이었다. 그 후로 선배 연구자, 요컨대 내가 인도를 전혀 알지 못했던 시절에 인도를 잘 알고 있던 선배분들과 함께, 인도의 대도시에 있는 그런 가게를 방문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인도 사람들의 식생활은 이 10여년 사이에 너무나 다양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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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급속한 경제발전과 세계화의 확대로 여러 가지 스타일의 음식을 소비하게 된 인도에도, 여전히 독특한 스타일의 식생활을 옛날부터 계속 지켜온 사람들도 당연히 일정 수로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자이나교라는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 즉 자이나교의 신자들은 채식주의를 지극히 엄격한 형태로 지키는 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회는 여기서 소개하는 것은, 이 자이나교의 신도와 그들의 식생활이다.

그들의 채식주의는 오직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 뿐만 아니라, 자이나교가 지닌 특유의 생명의 관점과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선은 「자이나교」라는 종교를 소개하면서, 그들의 음식의 배경에 있는 생명관 그리고 식생활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사진1 – 인도의 쇼핑몰(구자라트주의 아메다바드)

 

1 자이나교란 무엇인가

 

오늘날 자이나교 신자의 분포

 

인도를 독립시키고 건국으로 이끈 그 마하트마 간디의 인생에 있어서 크나큰 영향을 준 자이나교 신자는 적어도 2명이 있다 [藤永 2014 : 3~5]

그중 첫번째 사람은 간디가 영국에 유학가지 직전에 있었다. 간디 그 자신은 유학을 꿈꾸는 한편, 어머니께서 타국의 나쁜 습관에 아들이 오염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무척이나 유학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그에게 술과 여자 그리고 고기를 멀리하겠다고 맹세하고, 어머니를 납득시켜, 그의 유학을 뒤에서 후원한 사람이, 베차루지라는 자이나교의 신자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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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람은 영국 유학에서 귀국한 뒤에 만난 라이찬드라는 자이나교 신자였다. 간디는 그와 사귀면서 큰 영향을 받고, 자신만의 사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간디와 자이나교, 이 둘의 만남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간디 자신은 힌두교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결코 자이나교 신자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간디가 태어난 장소가 포루반다루라는 마을인데, 현재 인도 서부의 다쟈라트주에 속하고(지도 1을 참고), 이 주는 인도에서 가장 많은 자이나교 신자가 살고있는 지역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간디는 태어났을 때부터 자이나교 신자와 만날 기회가 많았고, 그의 집에 자이나교의 스님이 출입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원래 자이나교가 왕성하게 일어난 장소는 인도의 동부 지방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구쟈라트주와 라쟈스탄주가 위치한 서부 인도, 그리고 마하라슈트라와 카루나타카주 등의 남부 인도에 자이나교 신자가 많이 분포하고 있다. (표 1)

 

표 1. 주요한 각주의 자이나교 신도의 인구수 (대략의 수 : 사람)

지명 인구
마하라슈트라주 1,400,349
라쟈스탄주 622,023
구쟈라트주 579,654
마디야 푸라데슈주 567,028
카루나타주 440,280

 

 

2 적은 인구지만 문자를 아는 사람이 많다

 

일본에 살고 있는 한, 자이나교라는 종교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지만, 인도 특히 앞에서 언급한 구쟈라트주를 방문한 일본인은 자이나교 신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것이다. 이 주에서 2012년부터 2년동안 유학하면서, 이 주를 방문한 일본의 비즈니스맨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자기 소개를 할 때에, 내가 「자이나교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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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공화국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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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면, 그들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이나교 신도의 사람을 알고 있다」 또는 「자이나교 신도의 사람과 일을 같이 한 적이 있다」고 대답을 했다.

자이나교의 인구는 전체 인도의 인구에 비해서 엄청나게 소수이며 (즉 0.4%), 인도 전체인구가 12억 명인데 대략 450만명 정도이다 (표 2). 이 정도로 소수파인데, 구쟈라트주를 방문한 적지 않은 일본인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한 분마다 이 자이나교의 신도를 알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조금 전에 말한 대로, 구쟈라트주 자체가 품고 있는 자이나교 신도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뿐만 아니라, 자이나교 신도 중에서 많은 비율로 비즈니스나 학문의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자이나교 신도, 특히 여성들이 문자를 알고 쓸 수 있는 비율이 높고 또한 학력도 높아서, 인도에서 특히 뛰어나게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다. (*1) 이것이 자이나교라는 종교의 특징에서 나온 것이라면, 자이나교란 도대체 어떤 종교일까?

 

표 2 인도에서 종교에 따른 인구비율

종교 인구비율 (퍼센트)
힌두교 79.8%
이슬람교 14.23%
기독교 2.3%
시크교 1.72%
불교 0.7%
자이나교 0.37%
조로아스트교 해당사항이 없다
기타 0.9%

(2011년 국세조사(國勢調査)에 의한 결과)

 

 

 

 

 

3 자이나교란 무엇인가

 

「자이나교란 무엇인가」라는 이 물음에 한마디 말로 답할 수 있다면, 「자이나교란, 지나의 가르침이다」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자이나교 신도란 지나의 가르침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라고 할 수 있다. (*2)

 

그럼에도 지나의 생애와 그 가르침의 내용은, 시대에 따라서, 지역에 따라서, 혹은 나중에 이야기하는 것처럼 두 개의 종파와, 그 분파 마다에 따라서, 각양각색인 경우가 많아서, 이런 이유로, 자이나교에 관한 여러 가지 상황때문에, 「자이나교에서......」라고 일괄하여 말하는 것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선 처음으로, 인도의 종교에 있어서 자이나교의 입장(주로 힌두교 신자와의 관계에 있어서)을 밝히면서, 자이나교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지나의 생애와 그의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을 전하는 매체로서 경전, 더 나아가서 지나가 죽은 뒤에 생겨난 2개의 큰 종파에 대하여,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상황을 간결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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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이나교는 「힌두」인가

 

자이나교는 「힌두」인가? 이 문제는 필자가 유학을 하면서 만난 일본인들이 가장 빈번하게 들은 것 중에 하나입니다. 언뜻 보기에 혼돈스러워 보이는 인도의 여러 종교에 있어서 자이나교가 서 있는 위치, 즉 자이나교라는 집단의 윤곽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물음에서 시작하고 싶다.

이 물음에 답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힌두」라는 말은 엄청나게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종교를 가르키는 일도 있다면, 민족, 혹은 가장 많은 요소를 포괄하는 「문화(권)」를 가르키는 일도 있기 때문입니다.

 

「힌두」라는 말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문화(권)」, 더군다나 쉬운 표현으로 바꾸어 말하면,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가 상상하는 것처럼 「인도풍의 모습이나, 인도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예스」이다. 자이나교는 2500년 이상 걸쳐서 내려오는 긴 역사 속에서, 언제나 그 시대와 그 지역의 문화와 깊은 관련을 맺어 왔다. 「힌두」 = 「인도풍의 모습」이라고 바꾸어 말 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자이나교 신도는 얼핏 보기에 일반적인 「힌두풍의」 옷을 입고, 「인도풍의」 집에 살고 있으며, 「인도풍의」 음식물을 먹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점을 나중에 차차로 밝힐 것이다). 이 같은 의미에서, 자이나교는 틀림없이 커다란 묶음으로 보면, 힌두 문화권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도, 자이나교는 남아시아 문화에 큰 영향을 받고, 또한 동시에 큰 영향을 계속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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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힌두」라는 말이 종교를 나타낸다고 하면,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노」입니다. 자이나교는 힌두교의 한 파가 아니며, 힌두교와 다른 체계를 가진 종교입니다.

 

5 자이나교에 신은 있는가

 

이것도 또한 앞의 물음과 비슷한 정도로 자주, 그리고 맨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며, 어떤 의미에서 자이나교라는 종교의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 같이 물어보는 사람들의 의도가, 「자이나교에도 (힌두교의 신처럼) 신이 존재하는가」라고 질문하면, 이 물음은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바꾸어 말할 수가 있다.

「자이나교 신자는 대체로 무엇 (또는 누구)를 신앙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앞 절에서 종교로서 힌두교와, 자이나교는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이것은 자이나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힌두교가 모시는 신들 (대표적인 것으로 시바 및 비슈누 등)을 숭배하는 일은 없고, 힌두교적인 바라몬을 꼭대기로 하는 종교적 서열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두 종교는 서로 다르다는 의미이다. 분명히 자이나교의 설화나 전기에는, 힌두교에서도 일반적인 인드라 등의 신들이 때때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의 대상으로 주역이 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자이나교 신도들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지나 (다른 이름으로 마하비라)와 그의 가르침」을 믿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도대체 힌두교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혹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까.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사이에는 단순히 신앙의 대상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이 두 종교를 확실하게 구별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바를 믿는 시바파와, 비슈누를 믿는 비슈누파는, 신앙의 대상이 달라도, 그들은 「힌두교」라는 범주에 따라서 하나로 묶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과 똑같은 주장에 따라서, 자이나교도 독자의 신앙 대상을 갖고 있다고 말 할 수 있고, 힌두교의 한 파로 여겨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은, 힌두교와 자이나교가 다른 가장 큰 이유가 있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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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거기에는, 베다 성전의 존재와 관련이 있다. 베다 성전이란, 기원전 1500년 경부터 인도라는 아대륙에 쳐들어왔다고 여겨지는 아리야 사람이 전하는 성전이다. 오늘날 힌두교와 한데 묶을 수 있는 집단은, 이 베다 성전의 권위와, 이 성전에 바탕을 둔 바라몬(사제계급)을 꼭대기로 하는 종교적 서열에 따라서 만든 집단이다. 이것과 반대로, 자이나교는 초기의 시대부터, 베다 성전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것이 힌두교와 자이나교와의 가장 큰 차이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베다 성전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자이나교 만은 아니다. 이제부터, 자이나교의 테두리 밖에, 즉 자이나교가 인도에서 자리매김을 조금 더 분명히 하기 위해서, 「자이나교는 인도에서 탄생한 또 하나의 종교, 불교와 닮아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6 불교와 공통점 – 사문(沙門)의 문화

 

자이나교가, 불교와 비슷하게 통하는 점이 있다는 것은, 자이나교의 큰 특징 중에 하나이다.

불교에 부처가 있듯이, 이와 똑같이 자이나교에도 마하비라(Mahavira, 지나)라는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한 지도자가 있다.

그리고 또한 이 두 분은 같은 시기에, 같은 지역에, 요컨대 기원전 6세기~기원전 5세기 무렵에, 인도의 동쪽 (오늘날 비하르주의 부근)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당시 인도에서 주류에 속했던 베다 성전의 권위와, 그것을 배경으로 한 바라몬(사제계급), 쿠샤트리아(왕족 또는 군인), 바이샤(서민), 수드라(하층노예)로 나눈 4가지 계급의 서열을 인정하지 않고, 독자적인 사상을 넓혀가면서 큰 교단을 만들게 되었다. 이러한 공통점을 두 분이 함께 가진 이유는, 두 분이 같은 기반, 즉 바라몬주의를 반대하는 사상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그 공통적 기반이란, 「슈라마나, 사문(沙門)」이라고 부르는 생활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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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자이나교가 전하는 경전은, 거의 똑같이 매우 이상적인 수행자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수행자의 묘사를 자세하게 비교한 결과, 두 종교가 초기에는 공통의 기반으로 「사문」이라는 생활 방식을 분명히 밝히려는 연구를 시도했다 [山崎, 1993년 : 186]. 이 연구에 따르면, 사문(沙門)이란,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신분을 부정하고, 누더기 옷(분소의 糞掃衣)를 몸에 걸치고, 유랑하면서, 탁발로 생활하면서, 당시 바라몬이 행하는 제사를 부정하는 자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면 왜 사문들은 베다 성전의 권위를 부정하고, 반 바라몬적 입장을 취했는가. 이런 배경에 관해서는 굴전화의(堀田和義)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원전 8세기 무렵에 인도에서, 바라몬이라고 부르는 사제계급이 힘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들은 베다라고 부르는 성전의 권위를 바탕으로, 쿠샤트리아(왕족이나 군인), 바이샤(서민), 수드라(노예 계급)라고 부르는 3개의 계급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뒤에, 농산물의 잉여생산으로 상업과 공업이 발달하고, 작은 도시가 생겨나는 등 사회 변화하면서, 옛부터 내려오는 가치관에 더 이상 묶이지 않는 「사문」이라고 부르는 자유사상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베다의 힘을 인정하지 않고, 바라몬교에 반대하는 사상을 주장했다. [堀田 2016 a : 20]

 

요약하면, 사회의 존재 방식 그 자체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그 때까지 지배적인 사상인 베다 성전의 권위에 바탕을 둔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여유가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도 마하비라도 이 같은 사문의 생활을 하면서, 바라몬주의의 입장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스스로 윤회로부터 해탈을 추구해서, 마침내 해탈을 달성할 수가 있었습니다. 자이나교는 마하비라 이후에 인도라는 아대륙에서 2500년 이상에 걸쳐서 끊임없이 이어져서, 인도 문화의 일부를 형성하면서, 힌두교와 다른 종교의 창시자, 마하비라를 숭배하고, 그의 가르침에 따라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집단입니다. 이제부터, 그 마하비라의 생애와 그의 가르침에 대하여 간결하게 소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