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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수학사

라마누잔 - 2

by 貧者一燈 2018. 11. 7.



그러나 라마누잔의 마드라스의 시대도
끝나고 있었다

1913년 1월 16일에 캠브리지대학의 수학자
하디(G.H. Hardy)에게
편지와 더불어 100개이상의 수학적 정리를 보냈는데,
인용문헌을 표기하지 않은 그 논문을

처음에는 하디가 의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윽고 그 내용에 경악하여
1914년에 라마누잔은 캠브리지대학에 초빙을
받게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하여 가장 생산적인 캠브리지시대로
옮겨간다

그후에 캠브리지대학에서 박사학위가 수여되고,
트리니티 칼리지의 학술협회의 회원이 되고
1918년에는 왕립협회의 회원으로 까지 선출되었다



라마누잔과 하디(S. Ramanujan and G.H. Hardy)

하디(G. H. Hardy 1877~1947)는 영국의 현대수학자입니다

(수학자 하디와 독일의 의사 바인베르크의 법칙이 있는데

'한 개체군 내에서 유전적 평형을 기술한 방정식'으로

이 하디-바인베르크의 법칙은 집단유전학의 기초가 된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5년동안의 영국에 머물면서
두 사람은 매일같이 만나고,

증명(證明)이라는 개념이 없는 라마누잔이
연구하여 생각해낸 정리(定理)를
하디가 재검토하였다

라마누잔에게 있어 하디는
처음에는 구름위의 높은 존재이었지만,
캠브리지시대에는 공동연구자가 되었고,
두 사람의 공동논문은 7편이 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허약체질로,
사는 토양이 바뀌어진 것도 있고해서
1917년 무렵부터
병마(病魔)가 라마누잔의 몸을 갉아먹었서,
이곳저곳 요양소를 옮겨다녔다

또한 엄격한 힌두교 신자로 채식주의자였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영국의 생활을 견디기 어려워서,
1919년에 귀국하였지만,

곧이어 32살의 나이로 병사했다
사인(死因)은 '간(肝) 아메바증'이 아닌가
하는 주장이 있다

라마누잔의 수학에 있어 그 공헌은
해석적 수론으로, 보형형식과 이것과 관련된
라마누잔의 예상(豫想)등,

이같이 얻어낸 성과의 대부분은 오늘날
새롭게 다시 고쳐져서 증명되고 있다

1920년 1월 12일에 라마누잔이 하디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 적혀있는
의(擬)세타(theta)함수의 문제는 아직도 미해결이다

하디는 라마누잔을 오일러(Euler)와 동등한 수학자로
높이 평가하고,
수학에 있어서 자신의 최대의 업적이
라마누잔을 발견한 것이다고
겸손하게 말하였다


-번역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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