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문(家門)에서
정치가, 학자, 군인을 배출한
프랑스의 명문귀족 드 브로이집안의
6대째 공작(公爵)인 모리스(Maurice)는,
파리의 호화로운 개인집에
실험실을 갖추고,
X-선스펙트름의 연구에
커다란 공헌을 한 물리학자이다
루이 드 브로이의 형 : Maurice De Broglie
저도 루이 드 브로이만 알았지, 이 모리스 드 브로이는
몰랐습니다 일본은 항상 새로운 것을 알으켜 줍니다~
1911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방사(放射)의 이론과 양자>를 주제로,
제1회 솔베이회의가 열렸을 때에,
그는 사무를 보는 사람으로
회의의 운영에 참가했다
이 모리스의 17살 어린 동생이 1929년에,
<전자(電子)의 파동성의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고,
그 후에 7대째 공작이 된 사람이
루이 드 브로이이다
루이 드 브로이(Louie Victor Pierre Raymond, de Broglie 1892~1987)
대체로 물리학의 문외한으로서(?), 좋은 착상(bon idee)으로
물리학에 공헌하고 노벨 물리학상까지 받은 프랑스의 귀족입니다
상상력과 착상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사랑과 아름다움도 중요합니다 ㅠㅠ
저의 생각에 bon idee는 고급수학에서 그리고 철학적 사유의 귀결에서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먼저 풀려고하는 문제가 있어야 하며, 많이 고민해야겠지요~
드 브로이는 처음에,
역사나 문학에 관심을 나타내었지만,
형의 영향을 받아 물리학으로
진로를 변경하였다
특히 솔베이회의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된 양자(量子)는,
드 브로이를 물리학으로 끌어들이는
신호탄이 되었다
형 모리스로 부터 전해들은
불가사의하고 매력적인 화제에 대하여
드 브로이는 시간이 흐른 뒤에,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1911년 10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물리학의 제1회 솔베이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양자(量子)와 관련하여
매우 번거롭게 괴롭히는
(아직) 해명되지 않은 여러문제가 토론되었다
이 회의의 서기(書記)의 1명으로,
그 기록의 출판을 준비하고 있던
나의 형은, 토론의 내용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그 때에) 내 나이 특유의 정열로,
나는 탐구의 길위에 있는 이러한 여러가지 문제에
관심이 돋아나고, 꿈처럼 빨려들었다..."
-번역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