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미 아말리 뇌터(Emmy Amalie Noether)는 1882년 3월 23일,
독일 바이에른주의 도시 에르랑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에어랑겐대학의 교수로
대수기하학, 대수함수론을 전문으로 하는 막스 뇌터입니다
엠미 뇌터는 수학에 대하여 일찍부터 조숙(早熟)한 재능이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젊은 날의 그녀는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소녀였습니다
어학(語學)에 큰 관심을 기울여서, 에어랑겐 시립여자고등학교
(현재에 마리 테레제 김나지움)를 졸업한 뒤에,
1900년 4월, 바이에른주에 있는 여학교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자격을 얻을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어학교사가 되지않고, 수학을 지망하여,
1900년에서 부터 1902년까지 에어랑겐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이 당시 독일의 대학에서는 여성이 정식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서, 강의하는 선생님에게 개별적으로 강의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1903년에서 1904년에 걸쳐서 겨울학기는 괴팅겐대학으로 옮겨서,
칼 쉬바르츠쉴드, 오토 블루멘탈, 힐베르트, 클라인, 민코프스키의
강의를 듣고, 그곳에서 에어랑겐으로 되돌아 왔지만,
이 때에 대학의 규칙이 개정되어서, 여학생도 동등한 입장으로
대학입학시험을 보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독일 수학자 파울 고르단(1837 ~ 1912) - 엠미 뇌터의 스승입니다
고르단이 D. 힐버르트의 기저정리(Basis Theorem)를 보고서 "이것은 수학이 아니라 신학이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1904년 10월 24일, 엠미 뇌터는 에어랑겐대학의 입학시험에 합격하여
입학하였습니다 1907년, 파울 고르단의 지도 아래서
불변식(不變式)을 연구하여, 학위논문 <3원 4차형식의 완전계의 구성>
(Uber die Bildung des Formensystems der ternaren biquadratischen Form)
으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구술시험(口述試驗)은 12월 13일에 있었습니다
1888년 힐버트의 기저정리(基底定理)에 의해서 불변식의 모습은
곧 일순간에 변해버렸지만, 엠미는 고르단의 구성적 정신에 입각하여,
계산을 거듭하여서, 331개의 불변식의 리스트를 작성하였습니다
학위에 이어서 교수자격의 취득을 얻는다는 보통의 코스(과정)은
그 당시 여성에게는 열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엠미는 아픈 아버지를 도우며 에어랑겐에 머물면서 수학연구를
계속하였습니다
1910년, 고르단이 퇴직하고, 그 자리를 에르하르트 슈미트가 계승하고,
다음 해에, 에른스트 피셔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습니다
엠미는 피셔의 영향을 받아서,
계산적 관점에서 추상대수학(抽象代數學)을 본다는 시점을 배우고,
스승인 고르단을 떠나서 힐베르트의 학풍(學風)으로 바뀌었지만,
고르단에게 보내는 존경심은 일생동안 잃어버리지 않고,
괴팅겐대학의 연구실의 벽에 고르단의 초상화를 항상 걸어 두었습니다
(...계속...)
일본어원서 <100인의 수학자>의
번역입니다~
(저도 엠미 뇌터의 직계제자인 네들란드의 수학자
B.L. van der Waerden(BL 판 데어 베르덴)이
직접 강의를 듣고 집필한 독일어원서 <Moderne Algebra
=현대 대수학>를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현대적 추상대수학의 새 시대를 여는 획기적인 책입니다
이 책은 세계각국에서 번역되었습니다
영어 일어 러시아어 프랑스어등...그러나
우리나라는 번역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독어판이나 일본판이 아니라 영어판을
보겠지요~
거의 80~90년이 지난 책이지만 여전히
독일에서는 교과서로 여겨져서 읽혀지고 있다
고 합니다
마치 독일의 볼크스바겐의 자동차가
같은 시대에 출현하여
아직도 쓰이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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