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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수학사

레오폴드 크로네커(3)

by 貧者一燈 2018. 8. 7.



크로네커가 "정수는 사랑하는 신이 만들었고, 다른 모든 수는 인간작품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1870년대가 되었을 무렵부터, 크로네커는 이와같은 언어로 상징되는 수학사상(數學思想)을
토대로 다른 수학자의 행위와 업적을 비판의 눈으로 보기시작하였다


바로 그때에 해석학(解析學)의 엄밀화에 대하여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시대였지만,
크로네커의 눈에는
<실수(實數)가 만드는 유계수열은 수렴하는 부분수열을 갖는다>
라는 볼차노-바이어슈트라스의 정리의 증명이 의심스럽게 보였다 또한
1882년에 린데만(Lindemann)이 원주율 <파이>의 초월성(超越性)을 증명했지만,
크로네커는 1886년 강의에서 이 증명을 언급하며,
<아름다운 증명이지만,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초월수(超越數)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평가했다
칸토르(Cantor)가 "초월수는 무한히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크로네커에 의하면 이것도
무의미한 것이었다


독일 수학자 C L F von Lindemann (1852 ~ 1939 )

원주율 파이(Pi)가 방정식의 해가 될 수 없다는 

초월성를 최초로 증명한 사람입니다


1877년에 하이네(수학자 Heine)가 <크렐레 수학학회지> 제71권(1870년)에 논문 <삼각급수에 관하여>
를 발표하려고 했을 때에 이것을 취소하라고 설득하고,

1877년에 칸토르가 논문  <다중형성체(多重形成體 = Mannigfaltigkeit)에 대하여>를

<크렐레 수학학회지>에 발표하려고 했을 때에도 이것을 저지하려고 했다고 한다

(<크렐레 수학학회지 제84권, 1878년에 결국 발표된다)


크렐레가 죽고난 뒤에, <크렐레 수학학회지>의 편집은 보르하르트가 담당하고 있었지만,
쉬타인너, 쇠르바흐, 쿰머, 바이어슈트라스와 함께 크로네커도 또한 편집협력자로서 이름을 올리고
발언에 힘을 행사하고 있었다


수(數)에 대한 크로네크의 생각은 1887년의 논문 <수의 개념에 관하여>(<크렐레 수학학회지
제101권)에서 표현되고 있다

크로네커가 1853년의 논문<대수적으로 풀 수 있는 방정식에 관하여>에 있어서,
아벨(Abel)과 갈루아(Galois)의 대수적 방정식론은 소차수방정식의 대수적 가해성에 관한
모든 연구의 토대가 된다-는 인식을 표명하였다


갈루아의 대수적 가해성을 좌우하는 것은 <모든 근의 상호관계>에 있다고 하는
갈루아의 사상을 계승하여, <모든 근중에서 임의의 두개가 판명되었을 때, 다른 근은
이러한 두 근으로부터 유리적(有理的)으로 도출된다는 것>이라는 대수적 가해성의
필요충분조건을 얻었다 (1831년)

크로네커는 이러한 필요충분조건의 밑바탕(根底)에 있는 것을 해명하려는 것을 추구하였는데,
대수적 가해방정식의 근의 형상(形狀)을 구체적으로 써서표현하고자 한 아벨의 구상을
계승하여 이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단순히 대수적 가해성의 판정(判定)을 넘어서
<가해방정식 그 자체의 성질>을 명확하게 돌출해내자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아벨의 방정식은 크로네커의 대수방정식론의 밑바탕을 만드는 개념이다
아벨은 일반적으로 대수적 가해방정식의 근이 가지는 멱(冪)근의 표시의 형태에 주목했지만,
계수역(係數域)을 한정할 때에 근의 형상은 일단 특이했다
파리로 향하는 도중에, 1826년 3월 14일에 프라이베르크에 있어서 크레루레에게 보낸
아벨의 편지에는, 유리수역에 계수를 갖고 대수적으로 가해한(풀리는) 5차방정식의 근의 형상이
쓰여져 있다


호른보에가 편찬한 아벨의 전집에서 부터 이 편지를 본 크로네커는,
이 아벨의 아이디어(Idea)을 계승하여 아벨방정식의 구성문제(構成問題)에 몰두하여,
유리정계수(有理整係數)인 아벨방정식의 실체는 원주등분(圓周等分)의 방정식이다-는
(크로네커의 정리),
가우스(Gauss)수체(數體)를 계수역(係數域)으로 하는 아벨방정식의 실체는
레므니스케트함수의 주기등분(周期等分)의 방정식이다-명확히 말했다
이 후자는 <유리수의 평방근을 동반하는 아벨의 방정식은 특이(特異)모듈러를 갖는
타원함수의 변환방정식에 연관된다>라는 문제의 특수한 경우이지만,


크로네커는 이것을 1880년 3월 15일에 쓴 편지에서 데데킨트에게 말하기를...
<나의 가장 사랑하는 청춘의 꿈(mein liebster Jugendtraum)>이라고 부르며,
이 몇개월 동안, 열심히 마음을 가지고 몰두한 결과, 앞길을 막고 있는
많은 어려움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믿고있다-고 그에게
보고하였다

이 착상(Idea)은 1853년의 논문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있을 것이다
이것이 <크로네커의 청춘의 꿈>이라고 하는 말의 유래입니다

1880년 3월의 시점에서 크로네크는 57살이다
크로네커는 데데킨트의 실수론(實數論)을 비판하였지만,
그 데데킨트는 청춘(靑春)의 꿈을 생기가 넘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수학의 친구였습니다


(...계속...)


**초월수(超越數)는 (대수적) 방정식으로 풀리지 않은 수를 말하고 있는 것입이니다

                            방정식의 해(解)가 될 수 없는 수입니다



(솔직히 저는 아벨과 갈루아 그리고 크로네커의 "대수방정식론"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어서 번역하는데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단지 기계적으로 독해하고 글로 옮겼을 뿐입니다... ㅠㅠ


   저는 국민학교 시절부터 위인전 읽기를 좋아했고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이러한 습관은 버리지 못하고

   특히 수학사와 수학자의 역사와 인생에 대하여 번역을 하고 있네요


   번역의 직역과 의역의 기술에대하여

   번역은 "빵과 건포도와 같다"거나 "일본어는 어순만 같고 전혀 다른 외국어다"

   에서 최근에 어떤 카페에서 구한 소중한 글귀를 표준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아름다우면 정확하지 않고, 정확하면 아름답지 않다" 는

   번역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스위스 시계가 되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