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쉬타인은, 깊은 과학적 문제에 관하여 토론하면서 산책한다는
독일적 전통을 좋아했다
그의 프린스톤에서 산책의 동반자중에 한사람이,
바로 수학자 쿠르트 괴델(K. Goedel)이었다
괴델은, 아인쉬타인보다도 한세대 젊은데, 1931년에,
'모든 수학적 공리계(公理系)는, 그로부터 유도되는
공리군(公理群)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증명(證明)도 반증(反證)도 할수 없는 명제(命題)를
가진다'
는 것을 밝혔다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
(아인쉬타인과 괴델 - 괴델(Kurt Goedel 1906 ~ 1978)
두 분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출신이라 먼땅 미국에서
서로 독일어로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괴델은 원래 순수수학과 물리학에 관심이 없었는데,
아인쉬타인을 만나서, 또는 그를 위하여...
아인쉬타인의 일반상대론의 해를 풀었다고 할만큼
대단히 우수한 인물입니다
일반상대론의 '우주론적 장의 방정식'
을 푼 과학자는
전세계에서 지금까지 10명쯤된다고 합니다
저는 괴델의 영어논문을 가지고 있는데 꼬깔모양(원추형)의
모형으로 푼 것입니다
20세기 수리논리학의 최대 인물인 괴델이 아인쉬타인에게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아인쉬타인은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겼고, 비교적 간단하게
편지를 써고, 일반적인 에세이를 썼다
그럼에도, 숙년(熟年, 45~65살)이 넘은 나이가 되었는데도,
어쨌던 계산은 능숙하게 잘했다는 것이 공정한 관점이리라
수많은 위에 붙이는 기호와 아래에 붙이는 기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되는 텐서의 계산에 대해서도 그는 빠른 지름길로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생략하지 않고 끝까지 다 계산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20세기 초엽에, 계산은 일반적으로 만년필이나 지우게를 사용하지
않는 연필을 사용하여 종이위에 하였다
중년의 아인쉬타인은, 계산하는데에 만년필없이
끝내는 일이 없었다 프린스톤의 연구실에서, 자기집에서,
그리고 여행중에도 항상 그러했다
죽음의 문턱의 침상에 있을 때도, 그와같은 방식으로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에 사물을 증명하는 것이 수학자를 정의한다는데에
그 특징이 있다고 한다면, 아인쉬타인은 수학자의 종족(種族)의
일원으로써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일반상대성이론을 아인쉬타인은 스스로의 유일한 업적이라고
보고있지만, 그는, 한 세기, 100년의 시련을 이겨냈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많은 관찰과 실험에 의해서
(그의 이론이) 검증되어왔던 것이다
양자역학과 분자물리학에 있어서 그의 초기의 공헌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다
과거에 정식화된 자연법칙이 그러하듯이,
그는 자연법칙에 대한 여러 명제를 수학적으로 정식화하였다
만약 실제세계의 일에 기본적으로 관계하는 그 누구라도
수학자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아인쉬타인도 그러하다
그는, 1955년 핵무기에 반대하는 <러셀-아인쉬타인 선언>에
서명한 직후에, 프린스톤에서 죽었다
아인쉬타인의 전기(傳記)와 업적의 전반에 대해서는
<아인쉬타인 전집, Collected Papers of Einstein.
Princeton University Press>는, 1987년부터
간행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1920년대까지 도달하고 있다
지금은 켈리포니아 공과대학의 다이아나 코르모스 부크발트
(Diana Kormos Buchwald)가 편집에 종사하고 있다
파이엔슨의 <젊은 아인쉬타인 : 상대론의 출현>
(板垣 良一, 勝守 眞, 佐佐木 光俊의 번역, 共立出版, 1988년)
도 참고하시면 다행입니다
((이 <100인의 수학자>중에서 '아인쉬타인'의 편은
루이스 파이엔슨의 책을 佐佐木 力씨가
편역(編譯)한 것입니다))
-번역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