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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수학사

5천년의 적분이론을 바꾸다 - 앙리 르베그

by 貧者一燈 2018. 6. 13.

 

 

앙리 르베그(Henri Lesbegeue)는 1875년에, 프랑스의 보베에서 태어나,
1894년부터 1897년의 사이에, 고등사범학교에서 공부하였습니다
낭시의 고등중학교, 칸느대학(1902~1906), 포아체대학((1906~1910)에서
가르친 후에, 1910년부터 소르본대학에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1921년, 콜레즈 드 프랑스의 교수로 임명되어, 그 다음해에,
과학학사원 회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941년에 사망하였습니다


프랑스 수학자 현대적분학의 창시자

앙리 르베그(Henri Lesbegue)


보이야는 <수학의 역사> (朝倉書店) 중에서
다음과 같이 르베그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02년에 낭시대학에서 받아들여진 그의 졸업논문(卒業論文)은,
사실상, 적분학(積分學)을 새롭게 재편성한다는 비상(非常)히 비범(非凡)한 것이었습니다
르베그의 연구는 당시의 적분에 대한 사고방식에서 비상(非常)히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집합론의 창시자인 칸토르(G Cantor)와 똑같이
그도 처음에는 외부로 부터 비판을 받고 또한 스스로 내부로 부터 자기불신(自己不信)
이라는 두가지 방향에서 심한 괴롭힘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고방식의 가치(價値)는 점차적으로 인정되었고, 이윽고
그는 1910년에 소르본대학의 교사(敎師)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베그는 "학파(學派)"를 만드려는 일도,
자신이 개척한 분야에 열중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르베그의 적분의 개념은 그 자체 일반화했을 때의 예(例)이지만,
그는 <일반화된 이론으로 환원(還元)되어버리면,
수학은 내용이 없는 단순한 아름다운 형식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것은 곧 죽음으로 끝나버린다>
다는 것을 무서워했던 것입니다

(주** 수학이론과 수식에 있어서 추상성과 구체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의 수학의 발전은, 일반화가 가지고 있는 폐해(弊害)에
대하여 르베그가 품고있던 무서움이 근거가 없다 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이 최후에서 논술하고 있는 르베그의 중도(中道)의 길을 걸어가자는 사상과,
그것에 대한 수학역사학자 보이야의 평론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해서는,
수학의 걸음걸이를 조금더 걸어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목:<ルベーグ積分30講 르베그적분30강>

저자:<志賀浩二 시가 코이>

의 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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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분(積分 Integral)은 나누어진 것을 쌓는다는 뜻으로

 아마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수학에서도 있습니다

 그후에 잘 아시다시피 뉴톤과 라이프니츠의 적분법이

 있습니다-아직 결점이 많은 미적분학입니다

 그후에 독일의 베른하르트 리만(B Riemann)의 적분법이

 탄생합니다 이 적분법이 보통 고등학교 때에 배우는

 적분법입니다 독일의 대학입시인 ABITUR의 수학에도

 현대적 해석학의 개념을 도입하여 자세하고 엄밀하게 다룹니다

 대학의 공업수학이나 수리물리학도 리만적분까지만 공부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불충분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이유는 적분을 하자면 연속적인 양인 실수(實數)의 개념이

 확실하게 수학적으로 정의되어야 하기때문입니다

 그렇게하기위하여 수학은 19세기말까지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실수(R)를 정의한 수학자는

 코쉬, 데데킨트 그리고 칸토르가 서로 다르게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하였습니다

 이 실수의 정의는 수학사의 하나의 혁명이라고도 합니다(^ ^)

 해석학적 수론(數論)에 있어 대단히 큰 발전입니다

 이 바탕위에 앙리 르베그가 현대적인 적분법을

 창조하였던 것입니다~

 수학이 '일반화라는 추상화'와 '단순한 구체성'사이에서

 르베그는 중도(中道)의 길을 걷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수학의 특징은 일반화 추상화 구조화 그리고

 공리화로 발전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적분의 기호 '∫∫' 를 "뱀"이라고 부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