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발레프스카야는 1850년,
러시아의 귀족(貴族)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럼에도 당시에, 여성이 러시아국내에서
고등교육을 받는 것은 어려웠다
하물며 전문(專門)이 수학이라고 하면,
그 어려움이 더욱더 커었어리라
그래서, 코발레프스카야가 선택한 방법은,
형식상의 결혼이었다
1868년, 18살의 그녀는 젊은 고(古)생물학자와
이름으로만 결혼하고,
독일로 유학가는 남편과 함께 간다는 형태로
함께 출국하였던 것이다
S.V. Kovalevskaya
러시아의 1500루불의 기념우표
소냐 코발레프스카야는 하이델베르크,
베를린에서 공부하고,
1874년, 편미분방정식에 관한 논문과
토성(土星)의 고리의 모습에 대한 수학적 이론으로,
괴팅겐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코발레프스카야가 연구한 토성(土星)의 고리
이 해에, 남편의 형편때문에 2사람이
(함께) 귀국하였는데,
소냐는 러시아에서 어울리는 자리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이러한 삶을 바꾸는 계기가
찾아온 것은,
남편이 죽은 다음의 해인 1884년이었다
소냐 코발레프스카야는 베를린에서
바이어쉬트라스의 지도(指導)를 받게
되었을 때,
K. Weierstrass(바이어쉬트라스)
(1815 ~ 1897, 수학과 인품이 모두
뛰어난 독일의 수학자)
김나지움의 선생을 하면서 수학을
연구하여, 베를린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수학의 엄밀함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는 이국타향의 러시아의
코발레프스카야를 받아들여서
개인교습을 하였습니다
3년동안 그는 그의 베를린대학에서의 강의와
똑같은 내용을 그녀에게 가르쳤주었다
그는 평생 독신이었는데
코발레프스카야에게 보낸 편지는
책으로 출판되어 있습니다
서로 알게된 스웨덴의 수학자 미타크 레플러의
추천으로,
그녀는 스톡홀름대학에서 강사로 취임할 수 있었다
스톡홀름의 시대에 소냐는,
프랑스 과학아카데미가 제시한 '강체(剛體)의 운동'에
관한 상금이 걸린 논문에 응모하여,
훌륭하게 상을 획득하여, 1889년에는
스톡홀름대학의 교수로 승진하였다
-번역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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