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만(G. F. B. Riemann 1826 ~ 1866)의 탄생일은
1826년 9월 17일이고, 태어난 곳은 하노버왕국(王國)의
탄넨베르크부근의 부레제렌츠입니다
아버지는 루터파의 목사이며,
그 이름이 프리드리히 베른하르트 리만이고,
메크렌부르크의 엘베강에 있는
보이첸부르크의 출신입니다
리만의 어머니는 샤를로테라는 분으로,
하노버의 에베르고문관(顧問官)의 딸이다
동생이 한명, 누나가 한명, 여동생이 세명이 있다
리만이 태어난 후에 몇년이 지난 후에,
아버지는 부레제렌츠에서 3시간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쿠비크보른교구(敎區)의 목사직을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리만은 그곳에서 10살때 까지 살았습니다
1840년 부활절에, 리만의 할머니가 계신 하노버로 옮겨서,
그곳의 김나지움에 다녔습니다
1842년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고향 쿠비크보른에서
60km정도 떨어져있는 류네부르크의 요한 김나지움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수학에 특별한 흥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요한 김나지움의 교장인 슈마르푸스는
자신의 서가에 있는 수학책을 읽는 것을 허락하였는데,
어느 날 프랑스 수학자 르장드르(Legendre)의 수학책
<수의 원리>를 빌려서
'이 책은 정말로 위협으로 가득차 있다
나는 암기해서 기억해버렸다'라고
쓰고, 일주일만에 반납하였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르장드르의 <수의 이론>의 3가지 판(版) 중에서,
리만은 1830년에 간행된 제 3판을 읽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모두 2권으로 된 대략 900페이지에 달하는 큰 책이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베른하르트 리만의 독일기념우표
(Georg Friedrich Bernhard Riemann)
류네부르크의 김나지움의 시대에
리만은, 유클리트이 <원론>과 그 주석(注釋),
아르키메데스, 아포로니오스, 뉴턴, 오일러의 저작을 읽었다
1846년, 요한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괴팅겐대학에 입학하였다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서, 4월 25일에
문헌학과 신학의 학생으로 입학절차를 받았지만,
수학에 대한 강한 관심을 그만둘 수 없어서,
수학강의도 청강하였다
여름학기에 슈테른의 방정식의 수치해법, 골트슈미트의
지자기학(地磁氣學)의 강의를 청강하였다
겨울학기에는 가우스(Gauss)의 최소이승법과
슈테른의 정적분의 강의를 청강하였다
슈테른은 가우스와 같은 위대한 수학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중에 펠릭스 클라인(F. Klein)의 증언에 의하면,
"리만은 그 당시에 이미 카나리아새처럼 아름답게
노래부르고 있었다"
라고 클라인에게 말했다고 한다
(<클라인 : 19세기의 수학> 石井 省吾, 道邊 弘번역,
共立出版社, 1995년)
-번역의 계속-
일본원서 '100인의 수학자'에서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