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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飜譯)의 열가지 원칙

by 貧者一燈 2018. 12. 4.



*우리나라 번역의 대가 안정효씨의 번역론입니다*



번역의 열가지 원칙(안정효: 번역의공격과 수비)

 

하나. 있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없앤다.

번역의 승부는 결국 "어휘"가 결정한다. 따라서 너무 빈번하게 사용되는 단어들, 가령 [있다] [수] [것] [너무] [가진] 등의 어휘는

가능하면 없애고 다른 단어로 바꾸어준다.
또 무의식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없는지 항상 점검하면서 감시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둘. 문체를 번역한다.

문체는 원문의 것을 그대로 따라가도록 한다. 빈 칸과 공간, 어투 모두를 번역해야 한다. 한 사람이 10명의 저자의 책을 번역하는데

한 가지 문체라면, 당연히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문체는 반드시 원저자의 느낌을 살려주어야 한다. 제멋대로 문단을 나눈다던가,

긴 문장을 잘라서 짧은 문장으로 바꾸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셋. 번역은 귀로 수비한다.

눈에 보이는 말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가령, 여기에 원칙 하나를 적용하자면 : 쓸 것이 아니라 -> 쓰지 말고) 원문이 우리말로는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는가를 '귀로' 들어보듯이 해야 한다. 원문의 상황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고 우리말에 어울리는 표현으로 바꾸어주도록 한다.

 

넷. 일관된 원칙을 만든다.

각자가 번역을 할 때 적용할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수록된 10가지 법칙 이외에도 세부적인 상황을 어떻게 다룰 지에 대한

내용도 정리가 되어야 한다.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여러 가지 것들을 다루는 원칙들을 정해두어야 한다. 가령, back이라고 할 때

우리는 원어로는 등이지만 우리는 등이 아프다고 하지 않고  허리가 아프다고 말한다.

 

다섯. 영어 문장은 한글로 써도 영어이다.

"그의 뺨이 그의 아내의 손에 맞아졌다."
우리말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들이 뒤섞여 있다. '그의'의 중복도 그렇고, 맞아졌다는 피동태 표현도 그렇다.
"그녀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다."라는 표현도 그렇다. 우리는 이런 것을 갖는다는 표현보다는 "그녀는 마음씨가 곱다"라고 표현한다. 번역은 우리말로 바꾸는 과정이다.

 

여섯. 번역은 창작이 아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면서 마음대로 문장을 절단 내고, 이어붙이고, 어려운 단어를 빼먹고, 원문에 나오지도 않는 멋진 표현을

보태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번역가가 가장 훌륭한 번역가이다.

 

일곱. 원문을 덮어두고 우리말을 다듬는다.

일단 한 번 번역을 하고 나면, 우리말만 보면서 부드럽게 연결이 되는지 살펴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번역을 마친 뒤에는,

잠시 그 책을 치워두고, 시간이 지난 뒤에 원문의 내용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나면 우리말만 보면서 정리를 하라.

 

여덟. 이해를 못하면 번역도 못한다.

우선 번역을 하는 사람이 이해가 안 간다면, 번역해 놓은 문장을 읽는 독자는 당연히 이해가 가지 않을 수밖에 없다.

모른다고 대강 얼버무리면서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꼼꼼이 따져물어서 알아내야 한다.

 

아홉. 번역은 시각적인 음악이다.

문장에서는 글자만 의미를 담지는 않는다.
공백도 의미이고, 그래서 빈 칸도 번역해야 한다.
장단 또한 음악이다.
길고 짧음은 문장에서도 음악이다.
전하려는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장의 길이는 분위기의 강도를 나타낸다.

 

열. 번역도 살을 빼야 건강하다.

모조리 '성실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쓸데없는 말까지 반복하고 첨가해가며 디룩디룩 살진 문장을 만들어 놓아서는 안 된다.
가령, 소유대명사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대로 옮기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wide range of'라는 표현을 보면 영어로 세 단어이니까 우리말로도 세 단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서

'넓은 범주의'라고 바꾸면 불안감을 느낀다. 사실 이 단어는 '광범위한'이라는 한 단어로 충분하다.

(빌려온 글입니다)